온라인 쇼핑 중에서 쿠팡은 손이 가지 않는 브랜드 중 하나다. 꼭 중국 큐텐 사이트를 보는 것 같은 쿠팡 특유의 정신 사나운 화면 구성이 싫어서인데, 상품 썸네일의 홍수 속에서 무한 링크로 연결된 위키피디아 페이지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팡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얼마전 쿠팡 허브 물류 센터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다녀왔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함이다. 먼저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것은, 이 글은 쿠팡 알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How to) 설명이 아니라는 거다. 여기에서는 그저 당시 있었던 일을 시간순서대로 서술하고, 내가 느낀 점만 이야기할 계획이라서 자세한 안내를 원하시는 분들은 인터넷에 쌓여있는 다른 글들을 참고하셨으면 한다.
나 역시 이번 쿠팡 알바가 처음이었던 터라, 먼저 유튜브나 검색 사이트의 결과물을 여러개 참고했다. 무작정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리가 나야 확정이 가능한 일이라는 점 / 교통편이 좋지 않은 시도 외곽에 위치한 대규모 물류센터가 CFS(쿠팡 풀필먼트 서비스)이며, 이 쪽이 일당을 익일 지급해준다는 사실 / 비교적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는 쿠팡 캠프는 CLS(쿠팡 로지스틱스 서비스) 계열이고 여기는 급여를 주급으로 주기 때문에 운 나쁘면 돈 받는 데 일주일 이상 걸릴 수도 있다는 내용 등등.... 알아둬서 나쁠 건 없는 사항들이기에 잘 기억해 두고 알바몬 사이트에 나온 쿠팡 공고에 나온 대로 지원을 해봤으나 첫번째는 인원이 차서 빈 자리가 없다고 거절 당했다. 다음 날, 두번째로 지원 신청을 넣은 다음 내 발길은 동네 다이소로 향했다. 유튜브에서 봤던 유경험자의 조언대로, CFS에 당첨되었을 경우 개인 사물함을 잠그는 데 필요한 자물쇠를 하나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닌데 뭐하러 샀냐고 물으신다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라고 대답해드리겠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정말로 보안 문제 때문에 자물쇠를 구매하시려는 분들께, 다이소 제품은 피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서, 다이소 제품은 대부분 구색은 갖출지언정 자물쇠 본연의 임무와 강도에 걸맞는 레벨의 물건은 절대 아니다. 진짜 다급한 사례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자물쇠는 열쇠집에 가서 최소 만원 이상의 제품으로 사는 쪽을 추천한다.
일단 자물쇠를 해결하고 남은 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못 보던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알바 지원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이었는데, 직접 통화를 시도할 줄은 몰랐다. 하긴, 초면에 무작정 문자부터 날리는 건 너무 나갔지. 전화로 목소리 조차 들어보지 않고 뽑았더니 나중에 온 사람은 완전히 다른 제3자였다거나 - 예를 들어 우리 말은 한마디도 못하는 외국인이라던가 - 하는 사태가 터질 수도 있으니까. 간단한 인적사항을 확인 후 통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폰으로 확정문자가 도착했다. 내가 일할 물류센터(HUB)와 장소, 그리고 시간대(저녁조 18:00~익일 04:00) 및 제대로 일을 마쳤을 때 받게 될 급여와 처음 근무하는 사람을 위한 안내문 링크가 포함된 문자메시지 3통이 연달아 도착했고, 관련 내용을 숙지하느라 1시간 가량을 소비했다. 쿠팡 알바에 필요한 출퇴근 체크용 어플 쿠펀치와 셔틀버스 노선 어플 설치 안내 영상 시청 및 필요사항 입력에 들어간 시간까지 모두 포함해서.
지정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시간에 맞춰서 쿠팡 전용 셔틀버스가 오는데, 내가 탄 노선은 그 날 총 탑승자 수가 8명 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사진 속 현대 카운티 미니버스가 왔다. (사람들이 많이 타는 쪽에는 45인승 버스가 배차된다) 저런 식으로 쿠팡이라고 표시된 버스가 바로 쿠팡 셔틀버스다. 다만 정해진 시간에 칼 같이 떠나기 때문에 어플에 나오는 출발 시각보다 최소 5분~10분 전에 미리 탑승장소로 가서 대기하는 편이 좋다. 쿠팡 물류센터가 보통 대중교통 노선이 없다시피 한 외곽 지역에 있는 만큼, 놓치면 여러모로 타격이 크다. 언뜻 생각하면 아주 사소한 일용직 알바에 불과할 지 몰라도 이렇게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한두명이 아니다 보니, 시스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쿠팡 측에서 철저한 시간 준수를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 시간약속 엄수는 현대사회의 기본 에티켓이 맞으니까 그러려니 하자.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광활한 물류센터의 위용이 눈 앞에 펼쳐진다. 2009년 경, 잠시 한진택배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뛰었던 경험 덕분에 내게는 나름 익숙한 풍경이었다. 만약 이번이 처음이었다면 - 저 사진은 센터 중간지점에서 촬영했다 - 압도당했을 게 확실한 규모였다. 과연 이 넓은 공간에서 나는 어디로 배치될 것인가? 어디가 되었건 간에, 고생길이 열렸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먼저 내린 사람들을 따라가서 쿠팡 HR 직원들로부터 인적사항을 재차 확인 받고 몇가지 서류에 사인한 다음, 출근 기록을 위해 핸드폰의 모바일 데이터 기능을 끄고 해당 센터의 무선 와이파이에 접속해서 쿠펀치 어플로 체크인을 마쳤다. 그리고 사물함 번호가 기재된 내부 시설 출입용 카드키 및 개인 사물함 열쇠를 받았는데, 이 때부터 본격적인 초보자 주의사항 전달이 시작됐다. 나는 스마트폰만 놔두고 가면 될 줄 알았지만, 스마트 워치도 사물함에 두고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짝 놀랐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들에게 두들겨 맞는 입장이니 조금이라도 내부 상황 유출이 가능한 기기는 모조리 금지시킬 만도 하다. 그러나 일반 손목시계도 반입 불가인 건 의외였다. 몸에 차고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허용되는 건 땀을 닦을 수건이나 물을 담아 마실 물통 정도가 전부다. 혹시 내가 일하러 온 곳이 쿠팡 물류센터가 아니라 국정원인 건가 싶을만큼 소지품에 대한 통제는 철저했다.
어쨌거나 개인 사물함 열쇠를 받은 덕분에 일부러 구매했던 다이소 자물쇠는 쓸 일이 없었다. 쿠팡 물류센터 보안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캡스텍 - ADT캡스의 그 캡스가 맞다 - 직원이 안전화 착용여부도 확인하는데, 나는 내 개인용 안전화를 신고 갔다가 KCS(산업안전보건인증원) 인증번호까지 보여줘야만 했다. 원래는 센터에 사이즈 별 안전화가 구비되어 있어서 각자 맞는 치수를 꺼내서 신으면 되는 시스템이지만, 내 발이 평발인 관계로 아무 신발이나 신었다가는 나중에 난리가 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인적으로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안전화 체크가 끝난 후 산업안전교육 /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 / 쿠팡 자체 물류센터 교육용 동영상 3개를 연달아 시청했더니 어느새 1시간 30분 가량이 흘러 있었고, 쿠팡 현장직원의 인솔을 받아 내가 일하기로 한 허브(HUB) 현장으로 향했다.
지하철 개찰구 형태의 게이트에서 임시 발급받은 카드키를 대고 현장에 들어간 직후, 쿠팡 직원의 현장작업 시범과 설명이 15분 가량 이어졌다. 그런 후 한 명씩 서로 다른 라인(컨베이어)에 배정 받고 이미 작업 중이었던 다른 아르바이트 분과 2인 1조로 본격적인 상품 팔레트 적재업무에 돌입했다. 정말 다행이었던 점은, 나와 같이 일하던 분 - 편의상 A씨로 지칭하겠다 - 외에도 주위 라인에 계신 분들이 모두 성격적으로 좋은 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 분들도 이 날 하루만 보고 말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이왕 이렇게 된 것, 잘 대해주자는 마인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거나 내가 배정되었던 곳이 대체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였다. 이건 상당히 놀라웠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한진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시절, 온갖 종류의 인간군상을 만났던 기억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그게 한번에 해결되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육체적으로 힘들고 협동심이 필요한 일을 할 때 파트너 성격까지 개차반이면 일 절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그 날은 정말 축복받은 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한가지 놀라웠던 점은 쿠팡 알바 중에서도 힘들다고 소문난 허브 쪽 일에도 여성분들 숫자가 꽤 되었다는 점이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약간의 힘과 대부분의 요령으로 노련함을 보여주는 모습이 굉장했다. 그도 그럴것이, 컨베이어에서 줄기차게 쏟아지는 크기와 무게가 제각기 다른 상품들을 플라스틱 팔레트 위에 순간적인 판단으로 위치를 정해서 망설임 없이 쌓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인터넷에서도, 실제 쿠팡 물류센터 현장에서도 "이건 테트리스(Tetris)다"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나처럼 공간 지각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것 때문에 한진택배 시절에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한진택배 5톤 윙카가 설사하듯이 한방에 뱉어내고 간 화물들을 1톤짜리 탑차에 옮겨 실을 때마다 몸도 몸이지만 머리가 얼마나 지끈거렸던가. 저 멀리 컨베이어 끝에 밀려오는 짐은 누가 봐도 무겁기 그지 없는 것들인데 반해, 그 앞에 잔뜩 가볍고 깨지기 쉬운 것들이 선발대로 먼저 와 버리면 일시적 선택장애가 발생한다. 무거운 걸 아래에 쌓고 가벼운 걸 위에 쌓아야 하건만, 화물이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와중에는 그걸 조절하기가 매우 어렵다. 결국에는 '에라 나도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먼저 나온 컴퓨터 모니터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3~40킬로그램짜리 홈트레이닝용 헬스기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얹어버리는 만행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게 되는게 물류 일이다. 그런 걸 경험에 의한 순발력으로 척척 해결하는 장면을 눈 앞에서 봤다면 감탄해야 마땅하다. 대단하십니다 여사님들.
그렇다고 감탄만 계속하고 있을 수도 없어서 나 역시 그 대열에 동참하긴 했다. 물론 어설프다 보니 내가 놨던 짐을 A씨가 보고 한숨을 쉬며 수시로 다시 정리하는 불상사가 터지긴 했지만, 컨베이어에 밀려있는 짐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내보내려면 별 수 있나. 이 와중에 가끔씩 쿠팡 직원용 주황색 형광 조끼를 입고 다니는 여성분들이 팔레트 위에 쌓아놓은 걸 폰으로 촬영하고, 테트리스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본인이 직접 다시 정리하기도 하는 등, 무슨 감시하는 것 마냥 순찰을 돌기에 신경이 쓰이던 차, 마침 A씨가 "저 사람들 왔다갔다 하면 좀 더 빨리 뛰어다니세요."라고 귀띔을 해주셨고, 그제서야 나는 이게 쿠팡 유경험자의 글이나 영상에 나오는 업무 독촉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나마 그럴 때마다 A씨가 적절하게 내 옆에 와서 "이건 이렇게 하세요!"라면서 일부러 시범을 보여주시고 내가 초보자라는 티를 확확 내 주신 덕분에, 그들이 내게 직접 뭐라고 하는 일은 없었다. (※ 이 자리를 빌어 A씨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A씨,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거에요.)
가로X세로 사이즈 각각 1100mm의 플라스틱 팔레트에 어느 정도 짐을 쌓고 나면 투명 비닐 랩으로 짐이 무너지지 않도록 적재 높이에 따라 3단계로 랩핑 작업을 하는데, 처음 하는 입장에서는 이것도 쉽진 않았다. 가장 아래쪽의 기초 랩핑 작업시에는 손으로 밀고 다니는 랩핑기를 쓰지만, 이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용하다 보니 기계를 쓸 수 없을 때는 랩이 감긴 대형 롤을 손으로 들고 사람이 직접 감아야 한다. 힘도 힘이지만 이게 정말 요령이 필요한 일인데, 뭐 하나를 배울 때 습득 속도가 남들보다 느린 내 경우에는 역시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제대로 하기 보다 왕창 감으면 안 쓰러지겠지 하는 마음에 여러 겹으로 계속해서 칭칭 감다가 쟈키(핸드파레트 트럭)를 가지고 다니는 쿠팡 직원에게 한 소리 들었다. 하긴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저 양반도 속이 터질거다. 팔레트 하나 완성해 놓으면 자신이 쟈키에 얹은 다음 끌고 가서 2.5톤 윙바디에 실어야 하는데, 엉망으로 감아놓으면 운반도중 쓰러질 게 뻔하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럴 때는 손재주 좋은 사람들이 참 부럽다.
짐을 옮기고, 쌓고, 감고를 반복하던 도중 야간 식사시간이 되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22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차피 목적지가 같은 만큼 식당 위치를 몰라도 앞 사람을 쫓아가면 되기 때문에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대신 누군가를 쫓아갈 때에는 "식당이 이 쪽인가요?"라고 물어보는 편이 좋다. 식당을 가기 전에 먼저 개인 사물함에 있는 핸드폰을 찾으러 가거나, 또는 화장실 부터 가는 사람들도 있어서 말 없이 쫓아가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꼭 그렇지도 않다. 어차피 밥 먹기 전에 손은 씻어야 하니까 화장실을 가는 쪽이 오히려 정석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식당에 무작정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입구에 있는 식권 발급기에 카드를 가져다 대면 무료로 식권이 발행되는데, 이걸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소란이 일어났다. 하필이면 발급기 용지가 다 떨어져서 식권 발행이 안되는 바람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쉬는 시간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내가 있던 오후조는 원래 식사시간 40분에 작업 중 휴게시간 20분을 추가로 쉬어서 총 1시간이 휴게시간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파트너 A씨에게 물어보니 "사람들이 야식 시간을 1시간으로 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가자고 건의해서 지금은 식사시간 1시간이고 추가 휴게시간은 없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마도 얼른 밥을 먹고 남는 시간에 눈을 붙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변경사항 같다. 하여간 식권 발급이 중단되자마자 얼마 안되는 쉬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분노한 사람들이 남녀 구분 없이 다들 일사불란하게 악을 쓰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들, 아까는 그렇게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면서 나긋나긋하게 말을 주고 받았건만... 식당 아주머니가 분노의 샤우팅에 놀라서 헐레벌떡 식권 용지를 들고 뛰어오기 전까지 고성이 오가다가, 다시 발급기가 작동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조용해지는 광경은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참고로 밥과 반찬, 국은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식사가 끝난 사람들은 흡연장소와 휴게실, 두 루트로 갈라졌다. 흡연장이야 설명할 필요는 없겠고, 휴게실에 간 사람들은 쪽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보는 부류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오늘이 처음이라 긴장이 되어 그런 지, 잠이나 핸드폰 보다는 스트레칭에 집중했다. 오랜만에 짐을 날랐더니 관절 마디 마디가 다 비명을 질러대서 남는 시간 대부분을 체조하느라 보냈고, 내 식사시간 겸 휴게시간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휴게실에서 다시 작업장소로 이동하는 게 마치 전쟁터에 끌려가는 군인 느낌이라 정말 싫었지만 별 수 있나. 그저 얼른 끝내고 무사히 퇴근하길 바라는 수 밖에.
속으로 투덜대며 작업장에 다시 카드를 긁고 들어간 순간,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사태가 그 새 벌어져 있었다. 컨베이어 전체가 화물 동산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화물들의 행렬이 분류 컨베이어 교차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서 라인 끝까지 이어진 것도 모자라, 컨베이어 양 옆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짐들이 마치 LG 트윈타워 마냥 쌓여있는 모습은 "아 X됐다."를 연발하게 만들었지만, 내가 맡은 라인의 참상을 본 주위 사람들이 모두 달라붙어 힘써 준 덕분에 - 시간이 좀 걸리긴 했어도 - 해결할 수 있었다. 쿠팡 허브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바로 이거다. 문제가 터지면 일단 서로 돕고 보는 것. 좋게 말하면 협동심의 발로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추가 인원을 고용하지 않고도 물류 경화 현상을 해결 가능하도록 자연스러운 연좌제를 구축했다고 해야 하나? 세상을 너무 삐딱하게 보는 것도 좋지 않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내 라인이 엉망이 되면 양 옆에서 도우러 오고, 나 역시 주위 라인이 그렇게 되면 도와주는 품앗이 느낌의 협동 작업은 근무시간 내내 이어졌고, 계속해서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숙달되는 느낌이..... 전혀 들진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걸 실시간으로 느끼는 마당에 숙련도가 오르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 행운이었던 건,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무거움의 대명사인 도서 종류(책) 물품과 마주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 20킬로그램 쌀가마하고 펩시 제로콜라 1.5리터 12병 세트는 징그럽게 날랐다. 대한민국 쌀 소비량이 점차 줄어든다고 뉴스에서 떠들어대건만, 컨베이어에서 잊을 만 하면 튀어나오는 쌀 포대들은 해당 기사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고, 펩시 제로는...모르겠다. 펩시에서 할인행사를 거하게 했는지도. 아, 고양이 모래가 생각 외로 많이 나오던데, 이게 무게가 상당해서 - 15킬로그램이었다 - 용변 처리용이 아니라 집사 역할에 지친 인간들이 참다 못해 괭이를 모래에 파 묻으려고 하는구나 하는, 어이없는 망상까지 떠올랐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간조(21:00~06:00)가 중간 휴게시간이 되어 잠깐 자리를 비우면서 - 내가 있던 오후조와 다르게 야간조는 식사시간과 휴게시간을 분리해서 지켰다 - 막판에는 거의 반 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일했다. 야간조들이여, 그대들은 전생에 무엇을 하셨기에 중간 휴식도 가능하신 겁니까. (※ 나도 멋 모르고 쉬러 갈 뻔 했다가 오늘의 파트너 A씨에게 붙잡혔다. OTL) 저기 화난 것 처럼 마구 쏟아져 나오는 탄산수 박스가 그대들 눈에는 정녕 보이시지 않는 겁니까. 어쩜 이리도 무심하시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신답니까. 부디 그 발길 이쪽으로 돌려주소서 (.............)
버티고 버틴 끝에 기어이 업무 종료시간인 새벽 4시가 되었고, 나는 아까 쉬러 다녀왔던 야간조 작업자들에게 최대한 기쁜 표정으로 뒷끝이 작렬하는 인사를 크게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2시간 더 일해야 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작업장 게이트를 지나쳐 얼른 사물함이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셔틀버스가 출발하는 4시 20분 전에는 무조건 탑승을 마쳐야 하니 서둘러야만 했다. 내 개인 물품을 도로 찾고 나서 출입카드와 사물함 열쇠를 반납한 다음, 처음 도착했을 때 쿠팡 HR 직원에게 들었던 대로 쿠펀치 어플을 켜서 퇴근(체크 아웃) 확인을 마쳤다. 이걸 해야만 급여가 나온다니 절대 잊으면 안되는 제일 중요한 사항이다. 그런 후에 셔틀버스를 타고 진짜 퇴근을 했다. 웃기는 일은 버스를 탈 때만 해도 괜찮았던 몸 상태가, 집 근처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 순간, 긴장이 풀린 탓인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발목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하차한 이후에는 집까지 절뚝거리면서 걸어갔다. 몸살까진 가지 않았어도, 오전 반나절은 손부터 발까지 온갖 관절이 다 아파서 고생 좀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급여 문제는 퇴근한 당일 오후 3시 46분, 쿠팡풀필먼트서비스가 정확히 16만1천4백2십원을 내가 지정한 계좌로 입금함으로써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되었다.
이 쿠팡 물류 아르바이트에 대해서 따져보자면, 일단은 단점 투성이가 맞다. 힘들고,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고,(개인 건강상태에 따라서는 사망할 수도 있고), 업무의 강도는 굉장히 센 데다, 쿠팡의 광고처럼 내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노가다 판과 비교해도 1시간에 불과한 휴게시간은 너무나 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이런 모든 점을 종합해서 봤을 때, 쿠팡은 그 가성비가 무지 나쁜 일용직 알바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쿠팡에 투자한 금액 30억 달러(3조원)를 감안하면, 그토록 엄청난 자본을 투입해 놓고도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란 게 고작 사람을 갈아넣는 시스템이냐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단점만이 가득한 복불복 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바라 볼 필요도 있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당을 그 날 혹은 그 다음 날에 확실히 지급해주면서 수도권의 거의 모든 지역에 노선을 갖춘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아르바이트라는 건 사실 대단한 일이다. 아무리 높은 일당을 지급해준다 해도, 서울 사는 사람이 지방에 내려가서 과일 수확하는 일을 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노가다 쪽이 훨씬 휴게시간도 많고 널럴하다고 한들 일하는 환경까지 무작정 좋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지하주차장 페인트 도색 작업 전 단계인 바닥과 기둥 콘크리트 표면 연마작업 하는 광경을 보셨다면 이 말의 뜻을 아실거라 믿는다. 보는 즉시, 이 일 하다가는 조만간 폐암에 걸려 죽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 덤으로 제일 중요한 한 가지. 진정한 남녀노소 불문 / 학력 및 경력무관이 적용되는 곳이 바로 이 쿠팡 물류 알바라는 점이다. 툭 터놓고 이야기해 보자. 일반적인 알바 모집 공고에는 '초보자 환영'을 명시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실제로 초보자들만 오길 바라는 구인자는 없다. 이왕이면 경력자를 뽑아서 바로 일에 투입시키기를 원하지, 일부러 교육시간을 할애해 가면서 기초부터 완성까지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쿠팡 알바는 초보자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거나 혹은 너무 어리다는 점 때문에, 또는 오버스펙의 고학력이거나 가방끈이 지나치게 짧다고 배척하지 않는, 실로 보기 드문 사례다. (※ 여기에는 쿠팡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최악의 알바로 악명이 높았던 택배 상하차 알바도 당연하게 포함된다) 사지 멀쩡하고 몸에 문제만 없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겠지만, 바로 이런 부분이 다른 알바에서 수없이 퇴짜 맞고 끝까지 밀려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동아줄이자 일종의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쿠팡에 면죄부를 주자는 건 절대로 아니다. 허나, 다들 핸드폰을 가지고 다녀서 이제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사진 속 공중전화가 누군가에게는 당장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 처럼, 일반적인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하루 하루를 살아나가기 위한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본인들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쿠팡 알바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