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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돌아갈래? 아니요, 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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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casting 2024. 2. 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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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영화 「박하사탕(2000)」 재개봉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이건 또 무슨 낚시성 제목인가 싶어 내용을 봤더니, 레트로 열풍을 다룬 기사였다.  한마디로, 걸그룹 뉴진스의 디토(Ditto) 뮤직비디오에서 시작된 과거 2000년대 느낌의 영상과 사진에 2~30대가 열광한다는 내용.  그래서 여행 갈 때 세컨드폰으로 아이폰 XS를 들고 가고, 예전 천만화소 미만 디카를 중고로 매입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다?  기사 내용을 길게 언급할수록 무단 전재의 소지가 있으니 얼른 기사 원문 링크부터 투척.

 

 

 

“나 돌아갈래”…흐릿한 저화질 사진에 빠진 청년들

# 직장인 이지수(30‧가명)씨는 2018년 구매한 아이폰 XS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DSLR 카메라처럼 사진이

www.msn.com

 

「흐릿한 저화질 사진에 빠진 청년들」이라는 제목이 내 눈에는 악의적으로 보인다.  '~에 빠지다'라는 영어의 수동태 표현에 가까운 저 동사의 속 뜻이 사실 그렇게 좋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빠지는 주체인 '누군가'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물이나 구덩이 같은 곳에 떨어져 잠기는 것을 의미하는 '빠지다'는 '~에 매몰되어 버렸다'와 같은 뜻이기에 더욱 그렇다. (탄광에 갇히고 싶어서 들어가는 광부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마도,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 하나인 '사랑에 빠지다 (fall in love)' 때문이겠지만, 실제로 '빠지다'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상황을 앞에 두고 사용하는 표현이라서 이런 식으로 써야 한다.

 

예 1) 영희 엄마가 마약에 빠져서 폐인이 됐대!  이를 어쩌면 좋아!! 나도 하나 달라고 할 걸!!! (??????)

 

예 2) 외국 헤지펀드들의 덫에 빠져서, 한국 증시가 계속 추락하고 있습니다. 풍악을 올려라!!! (어?!)

 

그러니까,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빠지다' 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잖아도 '저화질'이라는 단어가 고화질의 반대말로, 일단 안 좋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마당에, 그 '흐릿한' 저화질에 빠졌다는 건 절대 정상이 아니니까 교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밑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문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로 처음부터 '옛날 느낌 사진에 열광하는 청년들'이라고 했으면 나도 이렇게까지 따져가면서 색안경 쓰고 삐딱해 질 필요가 없었을텐데.  아,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세가 드림캐스트 + 소울 칼리버 + 드캐 VGA-BOX 조합.

 

나도 나름 레트로에는 일가견이 있는 처지라, 이런 기사에는 좀 과민반응을 하는 편이다.  1998년에 처음 발매되어 2001년에 생산중단 된 일본 세가의 비디오게임기 '드림캐스트'를 아직까지 가지고 있고, 간혹 돌려주는 레트로 게이머로서 이런 종류의 복고 열풍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살아왔던 기억 중 하나이고, 내 인생의 일부였으니까. 

 

물론 직접 그 대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일종의 동경심을 가지고 복고열풍과 같은 사회적 현상에 동참하면서 얻는 유대감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내가 직접 다뤄보지 못했던 과거의 게임기들 - 아타리, 마그나복스 오딧세이, 메가드라이브 등등 - 을 보노라면, 그에 대한 추억은 비록 없다 하더라도 '한 번 해보고 싶다.  아니, 가져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늘 하기에 납득이 가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 하나, 이건 좀 의문이 드는게...

 

아니, 위의 저런 사진이 따뜻하다고?

 

나는 고화질 기기로 내 추억을 다른 사람들한테도 최대한 쨍하게 공유하고 싶은 사람인데?  당장 저 위의 사진만 봐도 그렇다.  따뜻한 걸 떠나서 사진 속 모든 피사체가 황달 걸린 것 마냥 누리끼리 죽죽하다.  필터 보정한 것도 없는데....  내 드림캐스트는 저렇지 않아!  내 소울칼리버는 저렇지 않다고!!  내 VGA-BOX 화질은 더 짱짱하단 말이야!!!  내 추억은 변비나 소화불량이 아니라고!!!! 나무코(NAMCO)!!!!!!!!!

 

※ 여기에다가 하나 더 추가하자면, 위 사진을 찍었던 해당 제품 (여기에서는 니콘 쿨픽스 7900)  발매 당시에는 「동급 최강 화질! 최고 화소수!」를 강조하며 샤프한 이미지 촬영이 가능하다는 걸 무지하게 어필해댔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이 말은, 지금 초고화질을 자랑하는 기기들 역시 세월이 흐르면 먼 훗날의 사람들에게는 따뜻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그 따뜻함의 기준은 상위 기종 / 제품과의 비교를 수반하기에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상대적이라는거다.  절대적인 게 아니라.  따라서 그 때가 되면 반대로 지금의 아이폰 15 시리즈나 갤럭시S24가 감성사진 촬영기가 될 지도 모른다.  지구가 자전할 때 마다 원위치로 돌아오듯이.

 

뭐 좋다.  어찌됐거나 내가 아끼는 드림캐스트는 무생물인데다 공산품인 반면, 보통 따뜻한 느낌을 원하는 사진 속 피사체는 대부분 인물인 만큼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감성을 외치는 이들에게 중요한 건 빈티지 디카가 아니라, 그 디카로 찍어내는 결과물이니까.  게다가 개개인의 감성은 다른 게 당연한거고.  그냥 이럴 때 쓰는 최고의 단어로 대충 퉁치고 넘어가자면...  세대차이라고 해 두자.  응. 그게 좋겠어.

 

하지만 오늘 다루고 있는 기사 말미에서 인용한 전문가 분의 말씀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글 쓰는 나도 꼰대라는 이야기. 맞말이라 할 말은 없다.JPG

 

 

그렇다.  나도 그렇고, MZ도 그렇고, 기사에 언급된 이들 뿐만 아니라 취미생활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렇다.  취미는 결국, 자기만족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간에, 본인 마음에 들었으면 그 뿐인 이야기다.  실로 그러하다.  기사 속 교수님은 최대한 점잖게 말씀하셨지만, 같은 맥락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잊고 있던 취미의 본질을 깨우쳐 주신 임명호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칠...

 

 

EC, 까먹을 뻔 했네.  진짜 중요한 건데.

 

기사 속 빈티지 디카와 구세대 아이폰 - 여기서 필름카메라는 제외. 필카는 취미쪽에서도 함부로 깠다간 큰일나는 분야다 - 으로 따뜻한 색감의 사진과 옛날 90년대 MTV 시절 4:3 비율 동영상을 원하는 분들께 마지막으로 질문.

 

 

인스타나 엑스(트위터) 없어져도 그 취미 유지하실 수 있겠어요?

 

힘들 것 같은데?

 

 

 

"나 돌아갈래!"의 원조, 박하사탕(20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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