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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디자인 : 예쁜 것들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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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casting 2024. 1. 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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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저 세상 사람인 스티브 잡스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역시 「디자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그 유명한 2005년도 스탠포드 대학 축사에서도 매킨토시 폰트가 윈도우 PC 보다 훨씬 예쁘다고 자랑했던 양반이었으니 - 뭐, 실제로도 그렇긴 하다 -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덕분에 애플 제품의 놀라운 판매량 만큼, 사람들의 예쁜 디자인에 대한 갈망과 충성도도 종교적 신앙심 레벨로 뛰어올랐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잡스가 아니었어도, 인간이 중심이 된 이 지구상에서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디자인에 대한 굳건한 철칙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바로 다름아닌 '외모지상주의'다.  영화배우 원빈이나 가수 차은우, 카리나한테 팬이 아닌 일반인들 또한 열광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고, 이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평소에 하고 있던 행동이라는 게 그 반증이다.  비록 못 생긴 것들(!)에 대한 차별이 전제조건으로 붙어서 - 아이폰의 역사적인 첫 발표회 당시, 잡스가 노키아나 블랙베리를 못 생겼다고 얼마나 까댔는지 기억하신다면 -  인종차별 만큼이나 논란을 불러오는 행동원칙이긴 해도, 잡스는 보란듯이 본인의 사업분야에 적용했고, 그게 제대로 터진거다.  애플 주가처럼.

 

 

 

매립형 세면수전 제품의 사례

 

 

 

잡스 사후에도 산업분야 전반에 디자인 광풍이 몰아치면서 그 대상이 핸드폰이 되었건, 길가의 보도블럭이 되었건 간에, 일단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나오는 모든 공산품은 무조건 예뻐야 하거나, 혹은 쩔어주는 느낌을 줘야 하거나, 아니면 둘 다 동시에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모든 디자이너들의 지상과제가 되어버렸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위의 사진 속에 나오는 매립형 세면수전이다.

 

※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방금 언급한 디자인 광풍지대에서 화가 / 조각가 / 패션 디자이너 같은 직업군은 제외한다.  이쪽은 애초부터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된 '원조 중의 원조 맛집' 같은 경우라서, 이 직업들 태동시기보다 훨씬 늦게 태어난 잡스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잡스가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 이전 시대 사람들인 구스타프 클림트나 미켈란젤로, 코코 샤넬이 잡스에게 영감을 얻을 일 자체가 없지 않은가.  반대면 몰라도.

 

저 매립형 수전을 보통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제품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디자인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용자나 제3자가 봤을 때의 평가이고.....  실제로 저런 물건을 다뤄 본 입장에서는 디자인 문제를 떠나서 무척 골치아픈 뒷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게,  「설치 및 보수과정 모두가 하나같이 지X같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나던 파이프와 기타 모든 부속들을 디자인을 핑계삼아 벽 속으로 전부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예뻐야 한다는 강박증과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이 만나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도 모자라 캠프파이어를 피워놓고 강강수월래까지 돌고 있는, 보는 것 만으로도 눈 앞이 아득해지는 제품이란 이야기다.

 

 

평범한 쓰리홀 세면기용 수전 : 저 밖에 나와있는 고압호스 이런 것들이 다 벽 안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물론 눈에 띄는 저런 흉물(!)들을 벽 안으로 싹 밀어넣고 맨홀 뚜껑 덮듯이 수전만 보이게끔 하면 공간도 덜 차지하는데다 참으로 심플하고 (예쓰!!!! 미니멀리즘!!!!), 거기다가 예쁘기까지 하니 (와우!!! 디자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오랜시간 동안 관련 업계가 저런 노출형 제품을 선호하고 고집해 왔던 이유를 외면한 결과물이 매립형 수전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매립형은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벽 타일부터 뜯는게 기본이니까. (벽 안에 모든 걸 다 밀어넣었는데 뭐가 문제인지 보려면 내부를 봐야 하므로 당연한 일이다.)  만약 전과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진 제품으로 교체할 경우, 벽 타일은 기본이고 내벽도 추가로 더 파내야 한다.  이쯤 되면 수전 교체 작업이 아니라 욕실 리모델링 공사 급으로 일이 커진다. 덤으로 지갑도 얇아진다 (....)

 

그 와중에 매립형 수전이 나름 귀하신 몸이라는 점도 비용 증가의 요인이다.  위 사진 속 일반적인 쓰리홀 수전이 - 세면기에 설치할 때 구멍 3개가 필요해서 쓰리홀 수전이라고 부른다 - 보통 3~4만원인데 비해, 매립형은 보급형 모델 조차도 20~30만원 선에서 출발한다.  좀 더 예쁜 미들 클래스 제품이라면?  고객님, 5~60만원 잡으시면 됩니다. 제품가격만요.  하이 클래스는... 말 그대로 하이니까 확 올라간다.  아이폰 15 프로맥스 신제품 하나 더 산다고 생각하시면 얼추 맞을거다.  설치와 유지보수 난이도, 비용이 수직 상승하는 단점을 압도적인 디자인으로 깔아뭉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예쁜 건 좋다. 죽여주는 디자인? 더 좋다.  선남선녀를 보고 두근거리는게 정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더 예쁘고, 더 멋있고, 소유욕이 뿜뿜 뿜어나는 대상에 혹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외모지상주의가 괜히 나온게 아니거든.  하지만 그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완제품이 아니라 저 매립형 수전처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공사/ 설치와 같은 부가적인 과정이 필요한 공산품에 대해, 나는 당당히 NO를 외치며 산다.  그걸 내가 직접 달아야만 하는 경우에 한정해서.  그렇다면 내가 직접 손을 대지 않아도 될 경우는 어떨까?  그때도 NO를 외칠 것인가?  아이 당연히 아니지.  그때는 무조건 YES지.  남이 대신 해준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고.  하여튼 사람이 이래서 참 간사한 동물이에요.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이거다.

 

 

최종 소비자로 사는 길이야 말로 승자의 길이다.

 

 

예쁜 건, 까탈스러우니까.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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